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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기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2023) 리뷰 (셀린 송, 인연, 윤회) 본문
어떤 인연은 지속되지만, 어떠한 인연은 헤어짐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헤어짐 이후에는 인연은 무의미할까? <패스트 라이브즈>는 완성되지 않은 인연에도 의미가 있음을 '윤회'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는 작품이며, 더 나아가 모든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 영화 정보 -
감독 : 셀린 송
* 장편 데뷔작
출연 :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등
매체 평점(2024.05.07. 기준)
왓챠피디아 : 3.4 / 5.0 (1.7만 명)
키노라이츠 인증회원 지수 : 90.65%
로튼토마토 : 95% (305명)
메타크리틱 : 94점 (52명)
IMDb : 7.9 / 10
*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후보
* 관람 가능한 OTT : 티빙 (2024. 05. 07. 기준)
* 본 리뷰는 작품의 스포일러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리뷰 -
'윤회'를 통해 완성되는 인연
주인공 '노라(그레타 리 분)'은 미래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 분)'과의 대화에서 '인연'과 '윤회'를 언급한다. 한국의 '인연'이라는 개념 속에서 부부는 수많은 윤회 속에서 팔천 겹의 인연이 쌓여서 이루어진 관계라고 말이다. 이는 극 후반 '노라(혹은 나영)'과 '해성(유태오 분)' 간의 대화에서 다시금 언급되는데,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의 인연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수많은 인연은 모두 다음 생 혹은 그 이후의 생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다는 결론은 그들의 인연을 무의미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때 보자'며 다음 생에서의 만남을 약속하는 장면은 상당한 여운을 남긴다. 그들의 인연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이후 생에서 이어질 수많은 '윤회' 속에서 그들은 언젠간 이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재 삶에서의 인연은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굉장한 여운을 남긴다.
인연이 끝나는 그 순간을 담아내다
열두 살 때부터 시작된 '나영(혹은 노라)'와 '해성'의 인연은 24년이 지나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마무리된다. 24년 전, 12년 전 있었던 그들의 인연은 유예되었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12살의 '해성'은 '잘 가라'라는 짧은 말로 '나영'을 보내줬고, 24살의 '노라'는 '나중에 연락하자'는 말로 '해성'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이들의 짧은 만남 동안 그들은 그들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 했고, 이는 그들의 관계를 모호함으로 덮어버렸다. 이렇기에, 36살의 그들이 '노라(혹은 나영)'의 남편 옆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을 논하는 것은 관계의 끝을 말한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전했기에, 더 이상의 미련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러한 말을 전함에도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관계는 사실 이미 끝났지만, 온점이 아직 찍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인연의 끝을 맞이하고, 이러한 인연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윤회'라는 관념을 통해 만나며 다음 생에서의 만남을 기약한다. 어떠한 인연일지는 그 생에서야 알 수 있겠지만. 택시를 기다리며 나누는 그들의 이러한 대화는 인연의 끝을 담아낸 명장면이다.
인연이 끊길 때 과거는 전생이 된다
'노라'에게 한국은 일종의 '전생'이다. 한국에서의 이름인 '나영'은 엄마조차도 이제는 부르지 않는 이름이고, 그 시절의 언어 역시 현재의 언어와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을 '나영'이라고 부르는 '해성'과의 만남은 영화 제목인 'Past Lives'처럼 전생과의 만남이다. 하지만 전생은 현재의 삶을 대신할 수 없고, 동시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과거다. '해성'은 과거의 존재이며, '나영'이었던 자신을 찾아온 전생의 사람인 것이다. '해성'의 존재는 '노라'에게 전생이 과거였음을 깨닫게 해준다. '노라'가 '해성'을 떠나보내고 '아서'의 품에서 오열하는 것은 이루지 못한 인연 때문이 아닌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라'에게 한국에서의 과거는 전생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음에도, 한국에서 괜찮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에 대학을 다니는 '해성'이 기초적인 영어를 못 한다는 설정 등 한국에 대한 세밀한 부분이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한국이 객체로서 소비되는 느낌이 약간 드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전생, 윤회라는 개념을 통해 한 남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이를 '노라'와 '아서' 간의 인연 등을 통해 우리가 겪는 모든 인연으로 확장해 여운을 이끌어내는 점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좋은 작품이다.
★★★★
- 2023년 5월 5일, 티빙 에서
* 2024년 15번째 작품
- 같이 보면 좋을 글
- 수많았던 가능성들을 생각하며,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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